이 예수를 (사도행전 2:22~36)
오늘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500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마틴 루터는 사제가 되어 사는 동안 자신 안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가톨릭은 베드로 성당을 지을 때 재정이 부족하자 재정을 모으기 위해 ‘면죄부’를 매입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홍보하고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가톨릭은 성도들이 죄의 문제 때문에 고민할 때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사제가 죄 사람을 선언하고 죄의 경중에 따라 제시하는 행위를 하면 죄가 용서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죄는 용서 받더라도 죄의 형벌이 남게 되는데, 성자의 공로를 교회가 가지고 있다가 성도가 용서를 구하러 오면 돈을 받고 공로를 팔아서 죄의 형벌이 용서 받는 보속교리(satisfaction)를 가르쳤습니다.
마틴 루터가 성경을 읽어가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95개의 조항을 공포하고 토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황과 주교는 마틴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탄압하게 됩니다. 루터가 주장한 것은 ‘어떻게 돈이 인간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가’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분이지 교황이나 보속교리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인쇄술이 발전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마틴 루터의 95개조 조항은 온 유럽에 퍼져가기 시작했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으로만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메시지가 퍼지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사제만이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유대인 3대 절기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을 칭찬하셨나요? 오히려 2번 채찍을 드셨고 제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성전을 정결케 하셨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은 가룟 유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민할 때 시편 69편 안에서 그 해결함을 찾았고, 그 말씀에 모두 순종하였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제자들은 스스로 자의적 해석을 했던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를 에스겔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유대인이 못 박아 죽인 그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요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기에 부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 안에서 확인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무엇으로 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어디에 세워져야 새로워질까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변함없는 진리인 성경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내 영혼의 갱신은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증인이 되어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