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 11:27 ~ 30
세상에는 재난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인한 인재도 있고 자연으로 인한 천재지변도 있습니다. 이런 재난에 대하여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하나는 어떻게 하면 재난을 미연에 방지할 것인가 이고 또 하나는 재난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느냐 문제 입니다. 본문은 안디옥교회가 흉년의 재난을 어떻게 대처하였는지의 말씀입니다.
1. 재난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인디옥 교회에 내려온 선지자중 아가보는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예언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선지자는 사도 다음으로 기록된(고전12:28, 엡2:20, 4:11)직분으로 한 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교회들을 방문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예언하였습니다.
아가보는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예언하였습니다. 말씀 전하는 자가 좋은 말 축복의 말 전하기는 쉬워도, 재난의 말 심판의 말 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선지자들도 참선지자는 축복의 말뿐 아니라 재난의 예언도 가감 없이 외쳤습니다. 예레미야가 겪은 고초도 바벨론침략의 재난을 예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은 전하는 자 뿐 아니라 듣는 자도 그대로 받아드리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당시 크게 부흥하는 교회가 됨은 온 성도들이 말씀을 잘 받는 열린 교회 였다는 점입니다. 말씀의 역사가 온 교회에 막힘이 없이 자유자재 하는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2.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글라우디오때에 그렇게 되니라” 로마 제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때에 로마영토 곳곳에 큰 흉년이 닥쳤습니다. 참선지자, 거짓선지자의 식별은 그가 말한 예언 성취 여부에 있습니다.
요셉은 바로 임금의 꿈 해몽으로 7년 풍년과 뒤이은 7년 흉년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의 해몽대로 먼저 7년 풍년이 계속될 때 닥쳐올 7년 흉년을 대비하여 곡식을 저장케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아가보의 예언으로 온 땅에 큰 흉년이 들리라는 것을 알게 된 안디옥 교회는 대책을 세웠을 것입니다. 평소에 근검절약 하여 닥쳐오는 흉년을 위해 저축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서 아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는데 그쳐서는 무익합니다. 알뿐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마7:24), 듣고 행치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 습니다. 야고보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고 하였습니다.
이 성경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축복의 말씀도 이루어지고 심판의 말씀도 그대로 됩니다. 축복의 인생이 되기 위하여는 이 축복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성되게 예배하고 이웃을 섬기고 전도를 실천 하고 십일조를 봉헌하며 감사의 삶을 실천할 때 축복의 결실이 있습니다.
부조를 보냈습니다. 유대에 있는 예루살렘교회 형제들의 빈궁을 생각하고 부조헌금을 해서 보냈습니다. 실상 예루살렘교회는 모교회이고 안디옥 교회는 지교회입니다. 지교회니까 모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갖지 않았습니다. 다같이 흉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돕는 손길을 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신령한 것 복음을 받았으니 어려운 때 물질로 돕자고 했을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이웃의 먼 곳에 사람들, 다만 주님을 믿는 믿음의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부조를 보냈습니다. 기독교역사상 안디옥교회는 최초로 구제헌금을 보낸 교회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 뒤 마게도니아교회 고린도교회 등에 도전을 주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구제헌금을 할 때 그 기준은 “힘대로”였습니다. 힘이 큰 사람은 많이 적은 사람은 적게, 힘대로는 헌금의 기준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행20:35) 안디옥교회는 복 있는 교회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사랑과 섬김의 삶으로 베푸는 사람입니다. 재난에 대처한 안디옥교회를 배워야 겠습니다.
류동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