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모범이 되는 안디옥 교회(2006. 2. 19)

안중교회 0 3,911

모범이 되는 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 11:19 ~ 26


로마 제국의 제 3의 도시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세계선교 전략상 매우 중요한


1. 전도가 본이 됩니다.

안디옥교회는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같은 이름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누군지 모를 무명의 평신도들의 전도로 세워졌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핍박으로 안디옥까지 몸을 피해온 구부로와 구레네 사람 몇이라고만 소개되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돌아오더라”(21절) 기록된 대로 주의 손이 이들과 함께 하셨고 전도성과는 놀라왔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시작부터 전도에 불붙은 교회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전도하는 사람에게 함께 하시고 사랑의 손, 능력의 손으로 역사하십니다. 어떤 분은 내 신앙이 좀 자라면 전도하겠다고 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여자는 그 즉시 마을로 들어가 전도했고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즉각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전도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즉각 전도의 사명이 있습니다. 전도할 때 주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어떤 분은 삶의 형편이 고달파서 이다음 형편이 좋아지면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 전도한 사람들은 피난지의 고달픈 처지에서도 전도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이던지 지금의 삶의 현장에서 전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힘이 없어 전도 못한다고 합니다. “힘이 없어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지라” 찬송처럼 그것은 핑계입니다. “전도! 하면 된다. 전도! 나도 할 수 있다. 전도! 한사람부터.” 구호대로 하면 됩니다. 주이 손이 함께 하심을 믿고 전도해야겠습니다.


2.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는 것이 본이 됩니다.

안디옥에서의 전도현상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실상 파악을 위해 바나바를 파송하였습니다. 지도자 없이 자생적으로 시작되어 수다한 무리가 된 안디옥교회는 좀 어수선하고 무질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 모든 현상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았습니다. 좋게 긍정적으로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칠 때에 여러 말 하지 않았습니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다만 이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안디옥교회의 표어요, 바나바의 목회철학이었습니다. 오늘도 은혜로운 교회는 온 성도들이 좋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는 교회입니다. 목사에게 붙어 있어도, 어떤 사람에게 붙어 있어서는 안 되고, 고락간 주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처음부터 지도자의 복이 있는 교회입니다. “바나바는 착한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행11:24) 라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복음적인 현상을 볼 수 있는 영적감각이 있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을 했고 교인들을 주님께 바로 인도 했습니다. 교회는 “큰 무리가 주께 더하는”(행11:24)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주께 굳게 붙어 있는 신앙은 후일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 구제하는 교회로 크게 성장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보다도 더 역량 있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양적부흥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고(26절) 교육을 통해 질적 부흥이 있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바나바가 행한 큰일 가운데 하나는 사울을 발탁하여 동역한 것입니다. 다메섹 길에서 주님을 만나 회개한 사울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사울을 사도들 에게 소개시켜 교인으로 영입케 한 것이 바나바요 고향 다소에서 놀고 있는 사울을 데려다가 공적인 사역자로 등장시킨 것이 바나바입니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큰 무리를 가르칠 때 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안디옥교인들에게 붙여진 별명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교회 밖에 사람들이 멸시 하는 의미로 부른 것이지만 실상은 영광스런 이름입니다. 이것은 예수쟁이란 말에 해당됩니다. 쟁이는 멸시의 말투지만 전문가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미쟁이, 도배쟁이……. 우리는 실상 예수쟁이가 되어야합니다. 전에 본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이 딸에게 소리를 가르치면서 “소리꾼은 기름 절은 장판처럼 소리가 그 몸에 절어야 한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신앙도 절어야 합니다. 예수가 나의 인격, 나의 삶에 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예수쟁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데 있습니다. 1200만 기독교인구가 그리스도로 절은 그리스도인이 될 때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주여! 예수쟁이가 되게 하소서.

3. 그리스도인이라 칭함 받는 것이 본이 됩니다.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들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류동형 목사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