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축제 (사도행전 16:16~3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경험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르기를 갈망했습니다. 그 거룩한 소망 때문에 그가 평생 자랑하고 일궈 놓았던 가문, 학식, 명예, 종교적 열심을 모두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빌 2:4~12 참고).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이 충만했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바울이 심히 괴로워”합니다(18절)라고 합니다. 무슨 문제 때문일까요?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가 괴로워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바울은 빌립보에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귀신의 힘으로 점을 치면서 번 돈을 여러 명의 고용주들에게 착취를 당하는 매우 안타까운 처지의 여인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귀신의 힘으로 “나는 네가(바울) 누구인지 안다”고 여러 날 떠들고 다니는 그 여인에게 긍휼과 연민의 마음이 들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부활의 소망과 기쁨으로 날마다 감격을 누리며 살고 있는데, 저 여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저렇구나...” 하며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사역을 합니다. 사악한 영에 사로잡혀 괴로운 삶을 살았던 여인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되고 기쁨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괴로운 그 여인을 기쁘게 한 대가로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괴로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군중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무덤과 같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계속해서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바울 안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신기하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려 바울은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고, 감옥 간수와 그의 가족과 식솔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무덤 같은 감옥에서 기쁨의 축제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부활의 축제와 같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크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민망하고 괴로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까? 비록 우리의 처지가 힘들어서 괴로울 때라도 주님을 알지 못해 영적으로 묶여있는 영혼들을 보면서 바울과 같은 ‘심령의 괴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심령의 매임, 예수님의 연민, 하나님의 가슴앓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파하는’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회복되고 구원 받아 영원한 부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무덤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을 하나님의 ‘괴로워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축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