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보다 마지막이 아름답기를 (히브리서 4:1~13)
히브리서기자가 히브리서를 쓰면서 고민하고 있는 성도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히4:1) 히브리서기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경외하라)고 말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점점 느슨해지고, 결국 하나님을 놓치고 세상에 밀려 떠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박해였습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로 로마를 떠나 여기저기로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겐 권력이 두렵고 사람이 두렵고 환경이 두려웠습니다. 히브리서는 AD.70년경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에 쓰여졌다고 추측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핍박에 두려움이 커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약속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4:1)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안식처까지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믿음의 삶을 살기위해 애쓰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안식의 자리까지 우린 가야합니다. 하지만 네로황제가, 가난이, 핍박이 두려워지자 예수님을 놓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놓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나님에게서 떠밀려 나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1:5-6)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걸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끝을 맺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1:11) 그 당시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은 영지주의였습니다. 영지주의란 예수를 믿었으니 육신은 무엇을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달콤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구원을 얻었기에 내 몸은 어떻게 살아도 된다고 하니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기자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실 때 그 손을 붙잡고 절대 떠밀려가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으로 순종해야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애쓰고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경외함)은 ‘말씀에 순종’하게 합니다. 온전한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