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고 거두는 사람 (갈라디아서 6:1-18)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며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이 외침을 들으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지금은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지만 불과 며칠 후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 사람들인데, 그들의 마음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그 걸음이 쉬우셨을까요?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처절한 고통인지 누구보다 잘 아셨을 예수님입니다. 고통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예수님, 이제 그분은 목요일 재판을 받으시고 금요일 돌아가시게 됩니다. 마지막 남은 예수님의 한 주간의 생애가 종려주일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로 가는 그곳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심는 사람과 육체로 자기를 위하여 심는 사람입니다. 베드로, 가롯유다, 본디오 빌라도, 대제사장들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로 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가롯유다는 재정을 맡을 정도로 신뢰받는 사람이었고 마지막 만찬에는 예수님 왼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13:2)” 가롯유다는 그의 생각을 지키지 못했고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겨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키워갔습니다.
가롯유다는 성령으로 심은 사람일까요? 그의 생각이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나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가롯유다는 성령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8절)”고 하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육체를 위해 심어서 몰락했고, 목을 매고 배가 터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7절)”는 말씀은 어쩌면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을 붙들고 예루살렘으로,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붙들고 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6시간의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계셨습니다. 성령으로 심고 계셨습니다. 백성들과 가롯유다, 심지어 베드로의 배신에도 분노로 대응하지 않으시고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어떻게 이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성령을 위하여 심은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한 자로 높여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심는 것은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으로 심고 있습니까? 육체를 위해서 입니까? 성령을 위해서 입니까? 이 고난주간에 성령을 따라 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이 끝났을 때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