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나로부터 (베드로전서 2:18~25)
삶은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순례자의 길을 걷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방랑자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어떻게 걸어야 할까요?
베드로전서는 로마 대화재 후 화재를 일으켰다는 누명을 쓰고 네로황제의 박해를 피해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베드로사도는 편지에서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소망을 포기하지 말며, 소망의 끝은 우리에게 영광과 기쁨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나그네로 흩어져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들, 삶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그들에게 베드로사도의 이 말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부당함과 억울함뿐이었습니다.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나도 이 고난은 해결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신 것 같았습니다.
이 고난에 대한 베드로의 답은 무엇입니까? 오늘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분이 계시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 덕분에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고 순례자의 길을 가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후에 당신이 만들어준 저 여자 때문에, 뱀 때문에 라고 변명합니다. “~때문에”라고 말하는 삶은 방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덕분에, 예수님 덕분에” 라고 말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혜를 품고 그분을 따라 사는 순례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순례자는 은혜를 기억하고 그분께 돌아가기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나음을 입었고, 걸음마다 도우시는 그 손길 덕분에 순례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방랑하는 사람의 입술은 신음이 가득하지만 순례자의 입술에는 노래가 있습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는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방랑자의 발걸음은 목적지가 없지만 순례자의 발걸음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시온성을 향해 갑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을 때 소망을 주시고, 그 소망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위로와 회복을 얻는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