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고 싶습니다 (시편 51:1~14)
하나님은 한낱 목동인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김으로 이스라엘의 즐거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즐거움은 다윗이 양을 칠 때 맹수들의 두려움에서 주신 구원의 즐거움입니다. 다윗은 법궤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출 정도로 이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은 권력있는 왕이나 전쟁터의 전략가이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랬던 다윗이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자 그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자,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십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양과 소를 많이 소유한 부자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행인을 대접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 유일하게 가진 암양을 빼앗아 잡은” 이야기를 전한 후, 부자가 바로 다윗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쓴 글이 시편 150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참회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시편 51편입니다. 그에게 더 이상 구원의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다윗은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51:11)라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성령이 거두어지자 악신이 들었던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었으나 신하들 사이에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을 것입니다. 한때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에게 쫓기면서도, 그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 인정하여 생명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다윗이 남의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충신을 죽이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자괴감으로 구원의 즐거움은 깨어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거스리려는 죄의 모습이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며,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믿음의 사람이지만 우리의 내면은 구원의 즐거움이 깨어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두려움과 처절함 중에 있을 때,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구원의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은 베드로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세 번이나 찾아오셨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회복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회복의 자리로 옮겨놓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며,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자리로, 회복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다윗이 죄인으로 살다가 죽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여디디야’라는 이름은 밧세바를 통해 태어난 솔로몬에게 주신 이름으로 '여호와께 사랑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통곡하며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였고, 이를 통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는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으면 씻겨지며, 부활과 회복의 은혜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한 해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통해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시길 갈망합니다. 구원의 즐거움은 교회의 담을 넘고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온 만방에 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