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업 (말라기 1:6~14)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1:6)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아들로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종으로서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말1:7)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며 심지어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더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총독만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그림자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알기를 힘쓰십시오. 더욱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말1:9)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서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술의 말은 헛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진정으로 양심을 놓고 하나님과 대면한 적이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나의 죄가 부끄럽고 괴로워서 눈물로 아파한 적이 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1:10)
하나님께서 두려운 말로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배의 문제는 제물이나 음악이나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중심의 문제입니다. 애통하는 심령으로 늘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것은 들짐승이 아니라 가축이었습니다. 매일 관심과 정성으로 기른 가축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기 위해 좋은 것을 먹이고 씻기던 가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