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속? (사도행전 1장 10~11절)
한경직 목사님이 은퇴 후 남한산성 계실 때, 그를 찾았던 한국의 내로라하는 목사들에게 ‘예수 잘 믿어’라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계시다가 이 땅에 오신 예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 다시오실 예수를 믿고, 그분이 평가하실 때 ‘너의 믿음이 부끄럽지 않았다. 너의 믿음이 옳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사도행전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 사이에 우리가 위치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떤 힘과 능력으로 살아야 하는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그 하늘(ουρανός 우라노스)로 떠나가셨습니다. 여러분, 하늘로 올라가신 그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믿음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2) 또한 고린도전서에서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믿음의 근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가신 후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실 것을 약속하심으로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성령으로 준비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영광스러운 날이 되기 위해 성령님은 우리의 삶과 생각을 도와주시고 인도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신랑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사는 신부처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붙들고 준비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가 내리는 날이 노아를 조롱했던 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 되었으나 노아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었습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옷과 신발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워 아들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영화롭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요한1서 2:28 말씀은 1세기 말 힘들고 연약한 성도들에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면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주님이 우리를 자랑스러워 하신다’고 전합니다. 다시 만날 주님 앞에 자랑할 것이 있도록 우리의 삶을 준비해 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령의 말을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일의 모든 마음과 생각을 쏟았더니 그는 영원한 하늘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기다림은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그 약속을 붙들고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며 살아서,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기쁨으로 주님 앞에 우리가 모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