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2 (창세기 3장 1~13절)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에덴동산에 비를 내려 식물이 자라고 채소가 자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찾아오실 때마다 아담과 함께 거닐면서 친근한 대화를 나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는데도 하나님을 피해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10절).
왜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였을까요?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가 손대지 말아야 할 선악과에 그들이 손을 대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해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여자때문’(12절)이라 하고, 하와는 ‘당신이 만든 저 뱀 때문(13절)이라고 합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셨던 은혜를 누리며 살았지만 그 은혜를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배신하고 떠난 이들을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길을 만드셨습니다. 은혜를 배신한 아담과 하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고(15절)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으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엡2:1-5).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우리가 다시 잃었던 에덴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전에는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2:23)이라고 하였으나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서로를 탓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것이 선악과를 먹은 후 에덴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이고 삶의 관점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살테니 네가 죽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죽고 네가 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에덴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우리 삶의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선악과로 살던 우리의 삶이 이제는 생명나무 과실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먹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이것이 생명나무 삶의 원리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배신이 아니라 갚아야 하는 빚이며, 망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하듯,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주신 은혜도 우리는 갚아야 할 빛으로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잃어버리면 선악과로 원망하는 에덴동산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가정이 선악과를 먹고 산다면 그 곳은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에덴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 때문에’가 아니라 ‘당신 덕분에’라는 관점으로 바꾸십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가정을 에덴으로 만드실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은혜는 기억해야 하는 것이며, 갚아야 하는 빚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부모님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듯이 그리스도의 은혜의 열기도 우리 안에 식지 않습니다. 그 은혜를 배신으로, 망각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갚아야 하는 빚으로 여기고 사는 자에게 영원한 천국의 에덴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