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고통, 미래는 불안 (요한복음 14장 1~5절)
여러분,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질까요? 현재는 고통스러워도 미래가 희망이 있다면 참아내고 견딜 수 있을텐데, 만약 현재보다도 미래가 더 절망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요즘 우리에게 들려오는 경제 소식은 별로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미래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살아가기 점점 버거운 현실과 직면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럴 때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제자들이 나누었던 내용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요 13:3)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요 13;5). 유대인의 문화에서, 잔치에 손님이 오면 하인이 발을 닦아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 보는 제자들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어 먹게 하시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그 뒤, 13장 마무리에 이르러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요 13:36)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안 되지만 후에는 된다는 뜻일까요? 마치 암호와도 같은 말씀을 이해할 수 없던 베드로가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 13:37). 그랬더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고 하십니다.
유대인의 문화에서, 제자가 스승을 배신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자인 베드로가 스승인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떠나간다고 하니 그의 미래가 불안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고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떻게 근심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요? 현실은 고통이고 미래는 불길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요 14:1)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를 또 믿어야 하며 이 믿음은 지속 반복되어야 한다. 지금 하나님 안에 들어와 믿고 있는가? 네가 지금 내 안에 들어와서 믿고 있는가? 현재 그 믿음이 유지되고 있는가?’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너희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믿으라’
미국 지폐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는다). 믿음이란 하나님 안에 들어가 그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예수의 성품과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경험하고, 그분의 공의와 정의로움을 경험하면서 그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희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믿으라. 그것이 근심하는 그 마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믿음의 축복이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