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로마서 4장 13~25절)
창세기 1장 12절을 보면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보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열매에는 영양분도 있고 맛도 있습니다. 이것을 먹을 당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참 보기에 좋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봄에는 비타민이 많은 딸기를, 여름에는 물이 많은 수박을 주시며, 가을에는 호두와 밤 같은 견과류를 주십니다. 씨가 열매가 될 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구원’에 대해 말씀하면서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그 당시 로마교회의 유대 기독교인들은 ‘구원은 율법으로 받는다’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입니까?
율법은 우리를 심판하는 기능을 합니다. 바울은 율법으로 구원받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율법 밖에 한 의가 나타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해주셨기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서 ‘속량’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의 대가를 당신의 몸으로 치루셨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속량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를 들어 말합니다. 로마서 4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가나안 땅을 줄 뿐만 아니라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너를 통해 많은 후손이 나도록 하겠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사라는 잉태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사라에게 하나님이 무리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지금 상황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중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는 그의 믿음이 온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계시면서 결정적인 때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감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건져주셨고, 전쟁터에서 지켜주셨습니다.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이고 사라의 나이가 89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삭이라는 열매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보며 웃었습니다. 보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씨앗을 심으면 이스마엘과 같은 비극의 열매를 맺게 되지만, 하나님의 언약이 씨앗이 되면 웃음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내게 주셨던 씨앗이 열매가 되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좋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은 열매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삶이 끝났을 때 부활의 열매를 맺게 되는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