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 (로마서 1장 15~17절)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수치스럽게 생각했으며, 부활을 부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바울이었지만,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였고, 아마 로마에 있는 성도들도 복음을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본문 17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기준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일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원천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목마름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샘솟는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그 복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타났다’는 말은 ‘비밀이 벗겨졌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벗겨지면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커튼 뒤에 감춰졌던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반복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에는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하셨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요.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니고데모는 ‘종교를 가지고 잘 살 것 같았으나 절망감을 느끼면서,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니고데모를 만나셨고 니고데모는 해답을 얻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 있었지만 불행했고 두려웠습니다. 그랬던 여인을 찾아갔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가난과 두려움과 불행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받아들이는 자마다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오는 놀라운 자유를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 그것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니었습니다. 육체를 입고 오신 그분은 죽어 무덤에 들어가셨으나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썩지 않는 영원한 부활의 씨앗인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은혜가 솟구치는 샘물처럼 바울의 영과 혼과 육을 적시면서 바울을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가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엎드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해답을 주십니다. 복음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부활의 영광입니다. 부활의 영광으로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게 쓰임 받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