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 (로마서 1장 8~17절)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을 졌다’(롬 1:14).
다소 사람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 즉 이방 나라에 사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사람인 스데반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였고,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스데반을 죽인 사형 집행관이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런 바울이 무슨 의미에서 자신을 가리켜 ‘빚진 자’라고 하였을까요? 그가 진 빚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는 바울을 만나셨고,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를 심판하실 수도 있으셨는데, 예수님은 바울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역자가 되어다오.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다오.’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품으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 중에서 죄인입니다. 그런 내가 예수님을 통해 용서받았습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에게 빚진 사람입니다. 하나님 은혜의 수혜자입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은혜의 빚을 갚으며 살겠습니다.’
바울의 가슴 속에 두 가지 빚이 있습니다. 그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만일 스데반이 살았더라면, 스데반을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스데반의 생명을 끊었고 복음의 발걸음을 무덤과 함께 묻어버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복음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므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나는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그 은혜에 빚진 사람입니다.’
사도로 사는 삶은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질도 당하였으며, 많이 굶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 번도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빚쟁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빚쟁이는 그 빚을 갚기까지 편안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많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삽니다. 하나님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성령님에게도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빚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도 빚입니다. 이것을 은혜로 알고 사는 삶, 빚으로 여기며 사는 삶이 이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에게 이 땅의 삶을 허락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도 빚입니다. 그 은혜의 빚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채권자를 채무자로 만듭니다. 바울은 하나님에게도 빚을 졌고, 스데반에게도 빚을 졌습니다. 그는 일생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빚진 자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빚은 갚아야 합니다. 빚을 갚으면 길이 열리고 자유로워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그 은혜의 빚쟁이가 되게 합니다.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모든 안중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