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을 때” (열왕기상 19장 1~8절)
솔로몬 이후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스라엘의 북쪽 왕 아합은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서 이스라엘에는 바알을 섬기는 신전이 생겼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과 바알 신을 믿는 백성들이 뒤섞이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선지자 엘리야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가, 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아합을 만나거라. 내가 땅 위에 비를 내리겠다.”
그리고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이겼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승리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봄날이 오게 한 것이죠. 아합 왕이 엘리야에게 포상을 주거나, 하나님이 그를 한없이 높여야 하셨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이세벨에게 가서 말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850명을 죽였다.’ 이세벨이 이 말을 듣고 엘리야에게 ‘네가 선지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을 이긴 엘리야가 오히려 도망을 갑니다. 왜 도망갔을까요? 목숨을 걸고 믿었던 하나님에 대해 이런 섭섭함이 컸을까요? ‘하나님이 아합과 이세벨을 막으셔야 하는데 왜 막지 않으셨을까? 내가 이만큼 했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보상을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엘리야는 분노와 절망감으로 광야에 간 것이죠.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120km의 거리를 지나고, 다시 브엘세바까지 약 120km의 거리입니다. 그리고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고작 로뎀나무 한 그루 정도만 있는 광야로 갔습니다. 자포자기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위기의 순간이 있습니다. 가정 경제의 위기, 천재지변, 그리고 전쟁으로 인하여 깊은 절망감이 생깁니다. 엘리야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에 머리를 묻은 채 하나님의 손에서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믿음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죠.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그에 합당한 일을 하셔야하는 것이 아닌가요?’ 여러분, 로뎀나무에 있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때 천사가 어루만지면서 일어나서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포기했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혈맹인 튀르키예(Türkiye)가 최근 발생한 강진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6.25 때 튀르키예가 우리의 옆에 있어 힘이 되었듯이 지금의 대한민국이 튀르키예의 옆에 있어 힘이 되도록 주께서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안중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고 성령과 함께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