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남편 (창세기 23:1~20)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 모든 성도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그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127세에 죽은 그의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는 장면입니다. 사라보다 열 살이 더 많은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살았으니까 사라가 일찍 세상을 떠난 셈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2절)
아브라함의 눈물 속에는 부부로 함께 살아온 사라의 긴 긴 생애 속에 맺힌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66세가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한 아내의 깊은 절망, 남편 따라 하나님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해 왔지만 7년이나 지속된 기근생활, 생존하기 위해 찾아간 애굽에서 경험한 남편의 배신과 수모, 가문을 잇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들이고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에게서 받은 여인으로서의 분노,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90세에 독자 이삭을 낳고 애지중지 키우며 지난 세월의 아픔과 상처를 다 잊고 더 이상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던 시간, 그러나 몇 년 안 되어 남편이 독자를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집을 떠나갔을 때 쓸어내렸던 메인 가슴,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났어도 쉽게 아물지 않은 아내 사라에 대한 남편 아브라함의 ‘미안한’ 마음이 회환이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4절) 아브라함은 그 미안한 마음을 딛고 사라의 장례를 준비합니다. 헷 사람에게서 매장할 “막벨라 굴”을 매입합니다(3,4,12절). 고매한 유지 아브라함이 굽실거리며(7,12절), “충분한 대가”(9,13절)로 “400세겔”(16절)을 지불합니다. 이는 오늘날 8천만 원에 상응하는 거액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사라의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비싼 장례를 치른 것만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어머니 사라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삭아, 네 어머니의 삶과 믿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실했는지 알았지!” 아들로 하여금 어머니의 훌륭한 신앙을 계승하게 해준 것입니다. 사라가 묻힌 이 막벨라 굴은 이후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서 요셉까지도 묻히는 ‘믿음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든 사라의 무덤은 무덤이 아니라 바로 믿음을 생산하는 어머니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인생 끝자락에 가족 간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미안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저 감정의 표현만이 아니라 서로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고, 부모-자녀-남편-아내가 기억하는 ‘영원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 간에 서로 아름다운 사랑과 훌륭한 믿음의 ‘기억’을 남겨주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