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뜻” (다니엘 11:29~35)
주전 539년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고, 70년간의 포로 생활은 끝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와 같은 대제국들의 움직임 속에서 이스라엘은 몸살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160년 전, 안티오쿠스 4세(주전 175년-164년)는 시리아에서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이집트의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많은 전리품들을 가지고 본토로 돌아갑니다. 주전 168년경 그는 이집트 정복을 계획하고 원정을 떠났으나, 그 때에는 이전과 달랐습니다. 로마가 지중해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이집트 정복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낙심합니다. 퇴각하는 길에 거룩한 언약을 맺은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저버린 사람을 뽑아서 높이 앉힙니다.
70세가 족히 넘은 다니엘은 이러한 환상을 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역대 많은 독재자들처럼 안티오쿠스 4세도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혜 있는 지도자들이 학살을 당할 것이나, 이 일로 백성은 단련을 받고 순결하게 되며, 끝까지 깨끗하게 남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므로, 풀무불과 사자굴 속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이 올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고난은 영적 씻음입니다. 그리고 고난은 영적 현미경입니다. 고난은 나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게 합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었으니,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시 119:50).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의 율례를 배웠습니다’(시 119:70)라고 우리 자신도 고백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분명히 사랑하십니다.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의 늪을 지나갈 때, 불 가운데 지나갈 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고난 중에 연단 받아 정결하고 깨끗하게 되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닐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중교회의 성도들은 고난의 현미경으로 자신의 삶과 영혼을 살펴보는 주의 백성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