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우는가?” (시편 137:1~9)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들에게 이미 반복적으로 예고하셨던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남은 유다를 지키시기 원하시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뉘었으며 북쪽은 이스라엘이라고 했고 남쪽은 유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은 유다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이미 200년 전에 앗수르에게 망했고, 이제 남아있는 유다는 지금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쪽 지방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을 통해 유다는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왕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42명의 왕들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했던 왕은 3명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이 참아낼 수 없으셔서, 선지자를 통해서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과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까지 올라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구원의 노래를 불렀던 백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성경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외쳤지만, 그들은 선지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못하도록 시위대 뜰에 가두었습니다(렘32:2).하나님의 음성을 듣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시고 축복하셔야 되지 않는가? 십일조도 잘 내고 절기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를 버리신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들과 다르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어디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1차 경고를 하시면서 왕족과 귀족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유다 백성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2차, 3차 경고가 내려지고, 587년 예루살렘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과 다윗 성, 특히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던 거룩한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자, 극심한 기근이 성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느부갓네살에게 패망하고, 성전의 기물들이 바벨론 신전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시온,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날, 그들은 두려움과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2700km나 되는 거리를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선지자의 말을 들었더라면, 하나님이 경고하실 그 때, 회개하였더라면 지금 이 곳에서 울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울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포로가 된 것은 하나님이 바벨론의 우상 ‘마르둑’보다 약해서가 아닙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둡니다. 그러나 회개가 없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피눈물로 거둡니다. 하나님의 백성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삶의 문제를 갈무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이 시대의 다니엘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