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내일” (창세기 6:9~12)
‘다가올 내일, 다가올 미래는 과연 어떤 날일까요? 잠언 27장에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루 동안 생길 일도 모르는데 1년, 2년, 10년 뒤의 일을 어찌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3년 전에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을 누가 알고, 우리의 삶에 경제적 위기가 다가온다는 것을 누가 예감했겠습니까? 그저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기대한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다가올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노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그랬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희망적이겠지. 열심히 살면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철학과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생각하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들이 생각하는 내일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내일은 동일할까요?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버린 인간은 하나님 앞에 후회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온 지면에 많은 인간들이 번성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을 내려다보시면서, 하나님은 후회하셨고 탄식하셨습니다. ‘어쩌다 세상이 이리 되었을까?’ 한없는 안타까움의 한숨소리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노아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11절에서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고 합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고, 전쟁과 폭력이 정당화되는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 성경은 노아에 대해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창 6:9)고 소개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보폭을 맞추며 함께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말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 동행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까?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가오는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 주시고 내일을 준비하도록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감사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나무로 만든 방주가 아니라, 내 영혼의 방주가 되신 그리스도에 들어가야 합니다. 안중교회는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위해 매일 ‘헌신의 시간’을 영상으로 갖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헌신의 시간’을 통해서 영혼의 방주를 든든히 지어가시기 바라며,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