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사랑” (요한복음 13:36~38)
니산월(1월) 14일인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는 430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그러나 유월절이 되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삶을 마감할 것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다’(요13: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13장에서,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라고 합니다. 아가페는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의 가치가 아니라 먼 미래의 가치를 보시면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혹에 넘어갈 만큼 연약합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넘어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보시며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식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가운데, 비록 마음은 괴롭지만 가룟 유다의 계획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셨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을 아시면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저는 목숨을 바쳐서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의회에서 공회원들에 의해 심문을 받던 그 시각에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따르겠다던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하녀와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예수와 한패’라는 말을 강하게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며’ 강하게 부인할 때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습니다(눅22:62).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한 베드로를 포기하고 버릴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처럼 실패하여 무너진 이들을 다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 복음이 되어 찾아오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은 성령님이시다, 내 모든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빌4:13). 주님의 능력으로 우뚝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행6:3).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이런 일꾼들이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