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 다른 사람” (요한복음 12:1~8)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소생시켜 주셨고,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완전한 반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무덤을 깨뜨리고, 죽음을 깨뜨렸으며,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무덤을 생명으로 바꾸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놀랄만한 사건에 대한 반응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메시아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바리새인들과 기득권을 갖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마지막 절을 보시면, 이러한 현상수배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어디 있는지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만일 이 명령이 사람들이 몰려드는 유월절을 앞두고 이야기가 되었다면,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에 퍼졌을 것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인 이 때에 예수님이 방문하신 베다니의 어느 집에서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 집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입니다(마26장;막14장). 그는 나병에 걸렸다가 예수님 덕분에 고침을 받아 나았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함께 갔다고 하였지만 요한복음 12장에서는 가룟 유다만 나옵니다.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치유함을 얻었으니 잔치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는 이 때에, 예루살렘에서 불과 3km 밖에 안되는 곳에서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위험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잡혀갈 수 있기에 자제하고 절제해야 하는데, 오히려 크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엿새 앞두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셨습니다. 어떤 이유로 나사로와 그 누이들이 그 집에 가셨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곳에는 봉사하고 수고한 마르다가 있었고, 예수님의 품이 그리워 안겨있던 나사로도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팔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삼백 데나리온 즉, 1년 치 품삯을 모아 멀리 인도에서 온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어서 머리카락으로 닦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만 계산하여 마리아를 나무랐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정성을 귀히 보셨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나의 장례를 치루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바친 것’과 같이 ‘너희의 시간을 깨뜨려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귀중한 것을 깨뜨려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깨뜨려 바치시고 마리아가 옥합을 향유를 바친 것처럼 자신의 시간을 깨뜨려 바치는 안중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