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사도행전 14:1~7)
지난 71년 동안 안중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중국 연길에서 교환 교수로 일하고 난 후 “연길의 기왓장 하나하나에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사는 안중에도 길모퉁이 하나하나에 우리 안중교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71년 전에 버들미라는 곳에(현 순복음 교회 자리) 안중교회의 모체가 되는 인광교회가 시작되었고, 1947년 1가정을 파송한 것이 안중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중교회를 통해 신영 항만 신포 토진 오성 길음 황금 홍원리 석정 등 많은 교회들이 분립 개척되어 지역선교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14장의 이야기는,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고 약 1400km를 여행합니다. 바울이 걸어갔던 발자취는 쉽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바울을 방해합니다(47절). 입신양명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데 정통 유대인들은 사람들은 바울을 박해하고 방해하며 전도를 방해했습니다. 마치 71년 전 안중교회가 시작될 때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회에 오기보다는 ‘굿이나 점을 쳐야 해’라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울 때 반드시 일어나는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180km를 달려와서 돌로 쳐서 바울을 죽였습니다. 돌 맞고 굶고 어려움을 만나는데 교회를 세울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 교회도 71년의 세월동안 쉬운 일만 있었을까요? 앞으로는 쉬운 일만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이 시대 목회는 3D업에 속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바울은 복음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 발자취에 성령은 함께 하셨고 허다한 무리가 복음을 믿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바울이 만약 안디옥이나 키프로스나 이고니온에 가지 않았다면 영생을 얻을 사람들이 생겼을까요? 바울의 헌신으로 초대교회가 세워져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성령은 구원 얻는 자들을 세우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22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려운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우리 주님이 우리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믿음의 사람들의 발자취입니다. 그 발자취마다 성령의 동행이 있는 발자취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곳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세워서 교회로 보내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은 발자취마다 하나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인생에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져 갈까요? 교회가 무너졌다는 이야기 혹은 교회가 세워져 가는 이야기가 써가지 않겠습니까? 바울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을 통해 일하신 성령님의 동행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의 이야기가 바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써 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은혜가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