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인격자 예수” (요한복음 7:1~13)
“유대인이 죽이려 함이러라”(7:1). 예수님께서는 우리안에 왕으로 임하시는 영광의 주님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살해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분이고 이 세상 만물이 그가 없이는 하나도 만들어진 것이 없는, 이 만유의 주인이신 그 분께서 자기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으로, 디베랴 광야에서 배고픈 군중들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시고, 38년 병자를 고치셨으며, 포도주가 떨어진 집에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일들이 예수님이 살해위협을 당할 만큼 큰 죄인가요?
“초막절이 가까운지라”(7:2).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히 지켜야 할 삼대 명절-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이 있습니다. 그 중 초막절은 장막절, 혹은 수장절(추수한 곡식을 저장하는 날)로 불리기도 합니다. 노래와 감사가 있으며, 감격이 있는 축제의 날이 수장절입니다. 광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신 것을 기념하여, 유대인들은 자손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셨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이 장막을 짓고 살았듯이 우리는 이 초막을 지으면서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진 시냇가로 가서 버드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격자로 엮어서 초막을 만듭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 개역개정).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초막절을 지킵니다. 유대인 남자인 예수님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해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동생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은, 이 지방에서 떠나 유대로 가서, 거기에 있는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이 하는 일을 보게 하십시오.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님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십시오"(7:3-4, 표준새번역).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형제들까지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6-7절에 그들의 형 예수님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너희의 때는 언제나 준비되었다. 세상은 너희를 미워하지 않지만, 나는 미워한다.’ 이 말씀은 너희는 ‘너희의 생각대로, 너희의 감정대로 살지만,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은 동생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은밀히 올라가셨습니다. 만일 동생들이 형님의 움직임을 보았다면 이렇게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형님이 혹시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언제는 안 온다더니 이제는 올라가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저버리고 살았던 아담은 모든 인류에게 저주와 눈물을 가져다 주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과 하나님의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믿음은 나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기도로 준비하며 소망 가운데에 기다리며 살다가 그 기쁨의 때를 우리 모두가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