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16 ~ 34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전도했습니다. 아덴은 철학의 도시요, 당시 로마제국 3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시장에서는 헬라인들에게, 특히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전도했습니다. 그때 그의 전도를 자극한 것은 아덴의 거리가 우상으로 가득한 것을 보고 일어난 분한 마음이었습니다. 전하는 바로는 당시 아덴은 사람의 수보다 우상의 수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지식과 철학의 도시가 우상의 도시가 되면서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우상에 돌리는 것을 보고 바울은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21세기 첨단과학문명 시대이지만 우리 주변에 우상숭배 양상은 그때 아덴과 방불합니다. 늘어나는 점쟁이 집, 한다하는 지식인 명사들도 줄을 잇는다는 유명점집, 개업식이나 첨단기계 설비 앞에 허연 돼지머리 놓고 꾸벅 꾸벅 절하는 광경, 우리주위에 흔한 일입니다. 우상숭배의 마음은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와도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졌을 때 한국은 도박의 나라라는 오명이 붙었었는데 그보다 더 우상의 나라란 이름이 붙을까 두렵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우상숭배의 현실을 보고 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이러한 우상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들과 에비구레오파 스도이고 등 철학파 사람들을 상대로 설교하였습니다. 에비구레오파는 행복이 인생 최대목적인데 그것은 쾌락추구에 있다고, 스도이고파는 도덕주의 자들로 극단의 운명설과 자기극기, 자기 의를 내세우는 사람들로 모두 복음에 상치되는 사상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대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심어줄수 있을까 긴장감으로 접근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덴거리를 둘러본 느낌을 들어서 먼저 그들의 종교성 많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이 종교성은 아덴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의 생기(창2:7)를 불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3:11) 영적지향성, 이 종교성은 하나님이 주신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성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헛된 우상을 향할 때 이것은 인간의 무지요, 죄악입니다.
다음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이름한 그 신은 정말 너희가 알아야 할 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알아야 할 하나님은
1. 우주 만유의 창조주십니다(행17:24). 창조주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요, 유일무이하신 전능하시며 모든 존재 하는 것들의 창조자가 되십니다.
2.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자십니다(행17:24). 하나님은 창조자 이실 뿐 아니라 만유를 다스리고 주재하시는 분, 역사의 주관자십니다. 하나님은 저 파르테논 신전 같은, 사람이 만든 집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고 사람에게 공궤를 받아 존속하시는 분이 아니고 친히 공급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재자십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지으셨습니다(행17:26). 기독교는 사해동포주의입니다. 아덴사람들은 우월의식에 빠져서 바울의 사해동포주의를 싫어했을 것입니다. 인류는 다 한 조상 아담의 후손이고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행17:27). 하나님은 나의 삶에서 가까이 계시며 경험되어지는 분입니다. 공기를 호흡하듯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5.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행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여 회개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보이셨으니 예수로 말미암아 계시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아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나타난 결과는 시원치 않았습니다. 더러는 비웃었고 더러는 연기했고 몇 사람이 믿었습니다.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 다마리라는 여자 또 다른 몇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 가운데는 그때는 아니지만 뒷날 복음의 싹이 나서 수많은 열매를 맺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 전하는 것 인간의 본분이요, 사명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