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요한복음 1:43~51)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요1:43)
예수께서 ‘시몬아’, ‘빌립아’, ‘나다나엘아’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오셨고, 그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이 만남으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무대는 유대 북쪽 갈릴리 지방입니다. 이 지역에는 디베랴라는 곳과 벳새다라는 곳이 있습니다. 벳새다는 ‘어부의 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곳의 주민들은 어부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살았을 당시의 상황은 평화로웠을까요? 그때 유대 국가를 다스리던 나라는 로마였고,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밑에서 유대 국가를 다스리던 4명의 분봉왕이 있었습니다. 이 분봉왕들은 로마 황제에게 잘 보여서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북쪽의 가이사랴 빌립보를 가이사에게 헌정한 것처럼, 디베랴라는 성읍도 티베리우스에게 헌정을 하였습니다. 또한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어획물을 거두어 판 돈으로 티베리우스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어부들은 얼마나 빠듯하고 힘든 삶을 살겠습니까?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자유도 그들에게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과 절망의 시대에 이 어부들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시몬을 부르시고, 빌립을 부르실 때, 그들은 어부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가 한시라도 빨리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갈망하면서,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소원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안드레와 베드로에 이어 예수님은 빌립을 불러 ‘나를 따르라’(43절)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았습니다. 이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은, 다른 복음서에서 ‘바돌로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45절)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반문하니, 빌립은 “와서 보라”(46절)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절) 나다나엘이 예수께 ‘어떻게 나를 아시는가?’하고 물으니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48절)고 하시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라.”(51절)고 하십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하늘 문이 항상 열려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은 야곱이 벧엘에서 본 환상을 연상시킵니다. 야곱이 가족을 보내고 홀로 남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야곱과 씨름하셨습니다. 야곱을 향해 하늘 문을 여시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너는 나와 겨루어 이겼다’)로 바꾸셨습니다. 마하나임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를 대립 관계에서 애틋한 형제 관계로 만드셨습니다. 안중교회 성도 여러분, 주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