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한복음 1:29~34)
이스라엘은 자유와 인권이 없이 남의 나라에 살았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성령 세례가 아니라 해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성령세례를 베풀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하필이면 많은 것 중에 한 마디로 ‘성령의 세례를 베풀러 왔다’고 하시나요? 과연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세례는 모든 것의 해답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거나 가난할 때, 또는 멸시받음으로 존귀한 삶을 원하거나 희망을 보기 원할 때, 모든 것의 해답은 성령세례입니다. 성령 안에서는 가난한자가 부요케 되고 병든 자가 치유되며, 삶이 새로운 시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영생을 누리는 것도 성령 세례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한 마디로 성령세례를 베풀기 위해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을 거부하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나의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할 때 ‘죄로부터 죽어야 하며, 죄로 부터 떠나겠다는 표시’로 요단강에 나아왔습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죽고, 낮아지고, 자신의 지식도 포기하고, 성령에 잠기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하늘이 열리고, 새 생명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낮아지심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 하늘이 열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는 말이 들렸듯이, 성령세례를 받고 내가 죽고 낮아지면, 하늘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해 주십니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능력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사로잡고, 우리에게 창조적 일을 행하실 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고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 마귀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성령세례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물속에 들어가시는 낮아짐과, 끝까지 십자가를 지심의 사랑과, 하늘에 올리어지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리의 통로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통로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와 이웃에게 주님의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