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자식의 눈물(5.6)

손창숙 0 3,705

자식의 눈물 (창세기 22:1~12)

 

오늘 창세기 말씀을 보면 이삭이라는 아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00세에 얻은 이 귀한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혹하실 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두 종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얼마쯤 갔을 때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지웠던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게 합니다. 이것은 이삭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에 묻습니다. 나무도 있고 불도 있는데 제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하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이미 아버지의 자신을 향한 큰 사랑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답을 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렇게 대답을 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곳에 가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습니다. 아마 이 일은 둘이 함께 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갑자기 이삭을 결박 합니다. 이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이삭은 이미 100세가 넘은 아버지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결박을 당하는 그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그 짧은 시간 이삭은 수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을 겁니다. 지금 이삭은 하나님과 아버지에게서 버림과 배신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아마 이삭이 그것을 뿌리치고 도망갈 마음이 있었다면 그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삭은 도망가지도 반항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결박을 당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칼을 뽑아 높게 든 아브라함의 얼굴을 이삭은 보았을 겁니다. 그 짧은 순간 아버지 아브라함의 고통을 아들 이삭도 느꼈을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말리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러분, 오늘 분문이 어떻게 시작을 했나요?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이 참담한 일을 진행을 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러나 이 위대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결국 만든 겁니다. 이삭의 눈물이 만든 겁니다. 이삭의 순종이 만든 겁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겠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이렇게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이삭을 자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 하게끔 돌보시고 키우셨을 겁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이로 키우셨다는 겁니다. 결국 이 시험은 아브라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삭에게도 동일한 시험이었던 겁니다.

 

여러분, 이 순종은 눈물 없이는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불순종에는 눈물이 없을까요? 역시 그 불순종에도 고통의 눈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식입니까? 우리 부모에게는 어떤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자식일까요? 그리고 이제 어떻게 자식으로서 살아가시렵니까? 바라기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숫양으로 말미암아 함께 부둥켜안고 울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처럼,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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