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책임지려는가 (마가복음 1:16-20)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이윽고 예수님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습니다. 그들도 아버지와 품꾼들을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그물은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고 부양할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그들은 무책임하게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간 것일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따라오라고 부르셨을까요?
당시에는 로마의 압제와 탄압에 저항하고자 힘 있는 누군가가 결집하면 따르려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처럼 스승이 부르면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는 문화가 있었습니다(왕상 19:19~21).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었으며, 과연 얼마나 예수님과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관계가 서로 책임을 주고받을 만큼 신뢰가 깊었을까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형 시몬(베드로)을 예수님께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40~42절). 안드레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받았고 ‘저 분이 바로 우리와 세상을 책임질 분이시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29~34절).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해서 허탄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갈릴리바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굉장히 많은 고기를 잡은 경험이 있었습니다(5~6절). 이 때 안드레뿐만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7~10절).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영육간에 책임져 주실 분이신 것을 알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자 믿음으로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의 백배의 복을 약속하셨고(막 10:29-30), 뿐만 아니라 ‘구주’(구원자, 주인)가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죄 사함과 부활의 소망, 그리고 하늘보좌와 천국영생을 주셨습니다. 바로 그 주님께서 그들을 ‘전도-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무한한 책임과 이행능력을 가지고 그들 앞에 서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사랑의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책임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는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면 주님은 무한한 사랑의 책임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모든 것, 즉 ‘예수생명과 풍성한 삶’(요 10:10)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고, 조금 손해를 보려고 하고, 그래서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행복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서 사랑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