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살았을까(2015.1.11)
손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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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10:04
왜 그렇게 살았을까 (마가복음 1:2~8)
요즘 영화 <국제시장>이 우리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 즈음에 태어난 한 소년이 아버지고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는 한국 근대화 과정(6∙25 한국전쟁, 광부∙간호사 파독, 월남전쟁 파병, 경제적 내핍생활 등)을 거치면서 자신의 삶을 조금도 돌보지 않고 오직 자식과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던 우리 시대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사명과 행복 이야기’입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백발이 된 주인공이 1∙4후퇴 때 헤어진 평생을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했던 고백이 오늘날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세워줍니다(“아바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하지만 너무 힘들었습니더... 그러나 내가 아니었으믄... 우리 자녀들이 힘들었을 겁니더...”).
오늘 분문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그는 황폐한 광야에서 거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쥐염열매)와 석청(돌에 떨어진 종려나무 열매 진액)을 먹고 살았습니다. 매우 내핍하고 검소한 삶을 살다가 30세 나이에 감옥에서 목이 베여 죽었습니다. 실로 처절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예수님을 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3절)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삶과 소명에 의문점을 갖는 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믿는 메시아(구원자)가 자신을 구해 주지 않고, 아니 한 번도 감옥에 찾아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행복하게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7절)
세례요한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깊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턱대고 예수님을 나타내고, 증거하고, 붙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 제물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 역시 죄를 자복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했지만(5절), 예수님이 바로 그 죄를 속량해주시는 메시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어떤 대가도 지불하는, 힘들지만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도 바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가리키고, 사람들을 ‘생명의 길’인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영혼의 이정표’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보다는 예수님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를 외치는 이정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세례요한에게 사명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2015 신년 부흥성회 강사이신 뉴욕의 거리전도자 지용훈 목사님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세례요한’같은 분입니다. 화려한 ‘스펙’과 명예를 뒤로하고 지구촌에서 수많은 인종의 사람들과 최고의 엘리트들이 군집한 뉴욕 맨해튼으로 가서 행복하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분 역시 예수님을 깊이 알고, 길 잃은 영혼들에게 ‘생명의 길’인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같은 분입니다. 여러분 모두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길 바랍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영∙혼∙육의 참된 행복으로 안내하는 ‘하늘의 이정표’가 되는 귀한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