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사랑스러워져 가는 삶 (누가복음 2:40~52)
지금 우리 사회는 잃어버린 자식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자식을 찾을 때 까지 부모의 삶은 근심으로 가득하기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식 잃어버린 부모가 등장합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요셉의 가족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절기를 지키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가는 길은 내리막길, 사막길입니다. 한 사람 걸어 갈 정도로 좁은 길입니다. 앞만 보고 신경 써서 가야 안전할 만큼 위험한 길입니다. 12년 동안 정성스레 키웠는데 그런 아들을 찾지 못하자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울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성전 안에서 태연하게 선생들과 토론하며 앉아있습니다. 어머니는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러나 잃어버렸어도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찾은 것이 부모에게는 위안이요 다행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잃어버린 자식은 없습니까? 만약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 자식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잃은 아이를 당혹스러운 곳에서 찾는 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요? 여러분에게 잃어버린 자식이 있다면 어디에서 찾기를 원하십니까? 잃은 자식이 있는데 성전에서, 영원한 아버지 집에서 찾을 수 없다면 우리 마음은 어떨까요? 우리는 자식을 지킬 수 없어도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자식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식이 아버지 집에 있다는 것은 영원한 보호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잃은 자식이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는 자식을 잃어버립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우리 아이들도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잃어버리면 우리 자녀도 기도하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40절에 보면 예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아이 손을 잡고 험한 길을 헤치며 해마다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결과 잃어버린 아이를 성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 안에서 잃어버린 자녀를 하나님 집에서 찾을 수 있나요? 사랑은 방치,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찾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찾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떻게 잃어버린 자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잃어버린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부터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제목으로 특별새벽기도회를 합니다. 그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을 향해 잃어버린 내 자식을 위해 울 수 있을 때 우리 자식은 하나님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잃어버렸어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고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자녀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사랑스럽게 클 수 있는 복된 자녀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그런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