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을 벗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11)
본문 말씀 속에 “겉옷을 벗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속에서 겉옷을 벗은 사람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이스라엘에 살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겉옷을 벗는 일은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이기에 유대인들이 겉옷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였을까요? 유대인들의 겉옷에는 “찌질”이라는 “옷 단술”이 달려 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의 613개의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율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옷 단술이 달린 이 겉옷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보여 주고 확증해 주는 아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겉옷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과 저녁의 종교 행위를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겉옷을 제자들은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벗어서 나귀의 등에 깔았고(7절)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지나가실 자리 앞에 펴놓았습니다(8절).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도 소중했던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나귀의 등에 깔고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자리 앞에 펴놓을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예수님의 제자들과 무리의 대다수가(8절) 자신들의 소중한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 앞에 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3년간 동행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능력들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원자로 왕으로 고백하며 자신들의 소중한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 앞에 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무리들은 갈릴리에서 자신들의 삼대 명절 중에 하나인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약 160킬로미터가 넘는 긴 여행의 길을 주님과 동행하였습니다(마 19:1-2). 이 동행의 시간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실 메시아이심을 그들은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 앞에 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과 무리들이 겉옷을 벗은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겉옷을 더럽힌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제자들과 무리들을 비판하고 욕하고 손가락질 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무리들이 과감히 자신들의 겉옷을 벗은 것은 벗어야 주님께서 입혀 주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니 자신들의 겉옷을 벗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과 벗어던지는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이 고난주간 우리가 주님 앞에 벗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 밟고 지나가셔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벗고 주님께서 그것을 밟고 지나가실 때에 그 안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