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한계(2007.11.25)

안중교회 0 1,784

마태복음 5:33~37 윤문기 목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 하나님은 정말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그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로 인해 우리의 맹세가, 약속이 깨어질 때가 있습니다. 한계를 가진 우리의 맹세가 지켜지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옛사람들에게, 유대인들에게 했던 말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그 문제는 맹세에 관한 말씀입니다(마5:33).

사람들은 왜 맹세를 합니까? 맹세를 지켜서 인정받고 싶어서 맹세를 합니다. “정말 당신은 신뢰할만한 사람이오. 믿을만한 사람이오.”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변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생각이 변할 때가 있습니다. 때론 내 건강이 실력이 물질이 안돼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멸시받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

여러분 성경에 보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싶어 한 사람이 있었는데,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13:37)라고 고백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러한 고백을 한 베드로도 예수님이 고통당하여 끌려갈 때, 그 모닥불 가운데 작은 소녀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막14:67) 라는 말에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막14:71)며 예수님의 제자임을 강력히 부인하며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버려두시지 않고 부활하신 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디베랴바다의 어둠속에 모닥불 앞으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네 맹세를 지키지 못한 것을 정죄하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다시 예수님의 제자로 회복시키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시 맹세를 지킬 수 있는 베드로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고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 위해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몸소 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통, 채찍에 맞으시면서 그 맹세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가시관을 쓰고 처절하게 고통을 당하시면서 맹세를 지키신 예수님은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님은 맹세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내가 안다고 베드로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네가 실패할 때마다 너를 돕기 위해서, 네 마음이 생각이 변할 때마다 너를 돕기 위해서 육체를 벗고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여 자기의 능력으로 지키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운데 능력이 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의 피가 내 능력의 에너지임을 고백하고 내 약함을 고백함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신념, 의지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가정도 우리의 약속을 지켜나감으로 더욱 풍성해 질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성령님께 의지하여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자가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결실을 드러내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보이기 위해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성령을 의지함으로 내 삶의 결실을 맺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의 결단이 믿음의 고백으로 드려질 때 우리의 삶의 약속이 열매가 되는 풍성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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