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나의 자리 2023.7.9

손창숙 0 681

나의 자리 (로마서 1장 1~7절)

 

 노예로 사는 것은 힘듭니다. 주인이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내 생각과 다를 때 나를 포기하고 노예처럼 복종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자신을 가리켜 ‘나는 노예다’라고 선언했을까요? 선언하는 것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정말 바울은 그렇게 살았을까요? 

바울이 살았던 로마 시대에 많게는 로마 인구의 절반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노예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인이 모든 걸 요구하면 모든 걸 해야 합니다. 여자 노예는 주인에게 몸까지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노예의 삶입니다.

사람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인권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항변한다고 해서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바울은 왜 노예로 살겠다고 했을까요?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폼페이우스’라는 영화에 자유를 얻기 위해 6명의 검투사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자유였는데, 자유인이었던 바울은 ‘나는 노예가 되겠다’라고 말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조금 더 깊이 이 말씀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언제 그 결심을 하였을까요? 그 결심을 하고 후회하지는 않았을까요? 노예로 살아가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요? 

여러분,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노예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괴롭혔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은 권력과 명예, 돈을 가진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자리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바울을 찾아오셨을까요?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하고 싶어 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바울은 그때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 암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바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믿었던 예수가 그 앞에 나타났던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예수님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갔던 바울, 스데반을 석형으로 잔혹하게 죽였던 바울을 예수님은 왜 찾아오셨을까요?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예수님의 원수다. 나는 연약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셨다. 나와 동행하자고 부르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그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나는 노예로 살겠다’라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그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바울은 멸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영원한 부활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을 떠난 배신의 자리를 찾아오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 노예의 자리에서 존귀의 자리로 옮겨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켜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멸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주시고, 이 땅에서 우리의 영혼을 책임져 주시며, 영원한 부활의 자리로 우리를 옮겨주십니다. 오늘의 이 자리는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앞에 나온 은혜의 자리입니다. 우리 안중교회 성도들이 멸망의 자리가 아닌 은혜의 자리로 옮겨지는 모든 복된 주의 자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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