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2006.9.3)

안중교회 0 2,625

사도행전 16:16~24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옷이 벗겨지고 많은 매를 맞고 발은 착고에 채워진 중죄수의 모습으로.

원인은 귀신에 사로잡혀 점쟁이 노릇하는 한 여종을 고쳐준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종은 본래 점친 수익금으로 주인을 이롭게 하였는데 바울 일행을 만나자 며칠을 쫓아다니며 소리를 치며 괴롭게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말은 맞습니다. 맞는 말을 하는 영이라고 다 성령은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은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보고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1:24)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꾸짖으셨지요.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랬더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기도하실 때도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고 수작을 했지만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물리치셨습니다. 술주정뱅이가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교회 나가야 한다고 예수 믿어야 한다고 소리소리 지르면 그 말은 맞으나 그것은 복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귀신들린 여종으로 인해 심히 괴로움을 느끼고 불쌍히 여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여자는 제 정신이 돌아오고 성한 사람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겼습니다. 여종이 성한 사람이 되어 점을 못 치게 됨으로 돈줄이 끊어지게 된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거리로 끌고 가서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두 가지를 들어 선동했습니다.

①이들은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소란케 한다고 반 유대감정, 인종적 편견에 호소했습니다.

② 로마사람에게 배치되는 풍속을 전한다고 반 로마적인 불순분자로 선동했습니다. 자기의 여종이 고침 받아 돈 벌이가 끊어진 것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군중은 속도 모르고 그 선동에 놀아났습니다. 관원들은 진상도 파악 않고 군중에 영합하여 이들을 투옥 시켰습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 것은 이 점치는 여종을 성한 사람으로 고친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종을 본 시각차가 있습니다. 이 여종의 주인들은 돈벌이 도구로 보았습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돈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불쌍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성한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존귀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을 하였습니까.

복음은 사람을 존귀한 인간의 모습으로 회복시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 인간을 존귀케 하심이요, 세상에 사시면서 교훈으로, 행하심으로 사람을 존귀히 여기고 사랑할 것을 친히 가르치시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라사 땅의 광인을 온전케 하시면서 더러운 귀신이 2천마리 돼지 떼에 들어가 죽게 하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막5:1-).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온전해진 사람 보다는 죽은 돼지 2천 마리를 보면서 예수님을 떠나라고 배척하였습니다.
이번 3주간 미국을 다녀오면서 더욱 느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나 보스톤의 비행기가 착륙하기전 마침 개인날씨에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아름다웠지만 더욱 아름답고 반가운 것은 아이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후배 동역자 들이나 가까운 분들과의 만남, 혹은 전화통화가 가장 보람된 일들이었습니다.

오가는 기내에서 마더 테레사의 글을 읽었는데 믿음, 사랑, 섬김을 호소하면서 특히 사랑은 가족사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요, 감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부, 부모, 자녀, 형제,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사랑의 가정을 이루어야 겠습니다. 또한 교회는 가정 같습니다. 교회에서 성도 간 존중히 여기며 미소와 친절로 서로 섬겨야겠습니다.

여종의 주인은 사람을 이용의 도구로 보았지만 바울은 사랑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이 핍박을 당한 것처럼,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에도 손해와 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삶을 복되게 하시고 그 이웃도 복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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