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찌” (요한복음 5:39~47)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애틋하여서 하나 뿐인 아들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듣고 배운 바대로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에는 마음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요 5:39-47).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도 하십니다. “너희는 나무를 보느라 숲을 놓치고 있다.”(you miss the forest for the trees -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닌가요?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 ‘성경 전체가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모세 오경의 주인공은 ‘나 예수‘다. 출애굽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 이사야도 내가 바로 메시아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태초에 창조 질서를 주관한 것도 바로 ‘나’다. 성경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진실로 믿는 사람들은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이 해소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어찌하여 너는 모세가 들려주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가? 38년 된 병자가 병에서 깨어나 안식을 얻은 것도, 왕의 신하의 아들이 생명을 얻은 것도 내 음성에 치유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양을 바치러 성전에 오지만, 어린양이 된 나 예수가 나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더 이상 양을 바치러 오지 않아도 된다. 너희가 만나를 먹은 것은 내 몸을 먹은 것이고,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신 것은 내 피를 마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는데, 너희는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바리새인처럼 우리에게도 종교에 대한 열심은 있지만 영적 생명력을 잃은 것은 아닌지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경청하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안중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