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사람 전진한 사람
사도행전 13:13~14
구부로 전도를 거쳐 밤빌리아 버가에 이르렀을 때 바나바와 바울 선교 팀내에 몇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습니다.
첫째는 선교 팀의 리더가 바나바에서 바울로 바뀐 것입니다.
이전에는 두 사람이 기명될 때 항상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나왔지만 여기서부터는 바울과 바나바 “이렇게 바울의 이름이 먼저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리더가 된 것을 나타냅니다. 바나바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나바의 훌륭한 인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신앙이나 사역에서 바울의 선배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을 영입하도록 중보역활을 한 것도 바나바이고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놀고있을때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와서 같이 목회하도록 배려한 것이 바나바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후배인 바울을 선교 팀의 리더로 세우고 자신은 그를 돕는 위치에 섰습니다. 구부로 전도에서 성령 충만한 바울의 활동을 보고 그의 인물됨을 본줄 압니다. 그는 기득권이나 자리에 연연 않고 오직 한 가지 효과적인 복음의 확장에만 뜻이 있은 탓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과연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은 것은 바나바의 영향이 컸습니다.
열린 교회 부흥하는 교회는 기존성도 고참 봉사자들이 새교인들을 환영하고 뒤에서 섬기고 재능을 따라 봉사하도록 세워주고 열어주는 교회입니다. 교회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도 선배가 유능한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격려할 때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둘째는 선교 팀의 한사람이었던 마가가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기되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두어 가지만 추축할 때 하나는 너무 고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젊음의 기분으로 선교여행의 꿈을 안고 떠났지만 장거리 여행에 몸은 지치고 어머니도 보고 싶고 편안한 집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이 밤빌리아 해안저지대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하고 후유증으로 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고 나도 걸려 죽으면 어쩌나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거라는 것이지요.
어떻든 마가의 후퇴는 불신앙이었고 그의 생애에 남긴 오점이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선교여행에서 조력자 마가의 이탈은 선교 팀에게 큰 아픔이었습니다. 마가는 다분히 충동적인 성격의 사람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꽤 많은 세월이 지나기까지 마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뒷날 안디옥에서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바울은 마가의 대동을 거절했고 대동을 주장한 바나바와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행15:38)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마가가 뒷날 회개하고 사도바울의 복음사역에 유익한 인물로 회복이 되었고(골4:10, 딤후4:11) 마가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의지하여 일어나면 됩니다. 하나님은 회복시켜 귀하게 쓰십니다.
바울과 바나바 선교 팀에게 마가의 이탈, 바울의 말라리아 열병, 넘어야 할 험산준령,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을 향해 선교사역을 전진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해발 1100m의 고원지대이고 버가로부터의 거리는 약 160km 가량 되었고 그 길은 소아시아에서 가장 험준한 카우루스산을 넘어야하는 힘들고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이 멀고 험한 길을 바울은 말라리아의 후유증인 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가야만 했습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갈4:13) 이 말씀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을 비롯한 갈라디아 지방에서 전도할 때 약한 모습을 상기시킨 말씀입니다.
마가의 이탈도 육체의 가시도 험준한 산길도 바울과 바나바 그 선교의 길을 막지 못했습니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상처도 어떤 주변여건도 굴하지 않고 전진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길 사역의 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후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의지하여 전진하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류동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