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감사절 (데살로니가전서 5:16~18)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주님의 재림이었습니다. 그들의 인사는 언제나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였습니다. 그런데 주의 재림이 늦어지자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도 받는 박해도 박해지만, 실제 삶의 모든 상황들이 힘에 겹기만 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바울로부터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 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고난은 계속되었지만,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감사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임한 고난이 죄의 결과가 아니고, 마귀의 장난도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믿었습니다. 범사에는 뜻이 있고, 하나님의 뜻인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힘들고 아픈 상황에도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최선으로 인도하십니다. 최고의 순간으로 인도하십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만이 우리들에게 선하고,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려워 보여도, 오히려 그것이 결국 우리들에게 최선이며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수용하고 인내하는 ‘성도의 최고 헌신’입니다. 감사는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최고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런 믿음에 서서 아주 작은 것(오병이어)을 가지고도 ‘축사(감사)’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감사가 만든 기적입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목요일 밤에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떡과 잔을 들고서 ‘사례(감사)’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것을 믿으셨기에 십자가의 피의 잔도 감사로 받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역경의 상황 배후에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지금 이 순간 보이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되지만, 그러나 내일에 보여 지고 이루어질 그 선하신 뜻을 믿으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감사의 사람이 되고, 기적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