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 』 (누가복음 2장 22~39절)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시므온이 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을까요?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받을 위로가 없다는 것이며 또한 세상으로부터 절망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위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해방이 이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로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위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시므온은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이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왔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믿음으로 살고자 했던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계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눅2:26). 이러한 성령의 지시는 하나님과 성령님 안에서 시므온만이 가지고 있는 약속인 것입니다. 시므온은 이 약속을 듣고 기다림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2:27)
기다림의 사람으로 요셉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아버지의 위로로 색동옷을 입은 이 요셉에게 믿음의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한 단이 일어서고 열한 단이 둘러서 절한다. 아버지는 그 꿈을 마음에 둔다’(창37:7) 그 후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곳에 갔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족히 100km 되는 거리를 찾아 형들에게 다가가자 요셉의 형들은 ‘꿈꾸는 자가 왔다. 웅덩이에 던지자’ 하면서 그를 웅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르우벤에 의해 웅덩이에서 건져내어진 요셉은 무역상에게 팔려 노예의 옷을 입게 되고, 노예 시장에서 보디발에게 팔렸다가 죄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고 기다리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는 간수들에게도 인정받고,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세마포 옷을 입고 손에 인장 반지를 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온 형들이 그의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게 됩니다. 요셉의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의 기다림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기다림이 있으십니까? 내가 생각하는 기다림입니까? 아니면 성령님이 내 안에 주시는 약속입니까? 우리의 기다림이 그리스도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는 따뜻한 말, 따뜻한 눈빛, 따뜻한 손길을 내밀면 좋겠습니다. 그런 은혜가 모든 성도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