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선 』 (사도행전 18장 1~11절)
오늘 18장 이야기 가운데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18절).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그러면서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떠납니다. 바울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서원을 했을까? 그것이 오늘 이야기 가운데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런 서원을 하지 않으면 될 만큼 두려움이 있었을까?
우리들의 삶 가운데,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환경, 사람, 건강 물질의 문제들이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는데, 그것은 단지 두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땐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는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았고 지금도 살려고 버둥거리는데 하나님이 왜 나의 삶 가운데 이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두 손을 내젓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과연 그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 나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여기서 한번 이 고비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켜 주소서’라고 말해야 하는가?
본문에서 바울은 아덴에서 880km 떨어진 고린도까지 먼 거리를 내려왔습니다. 많은 선교지 가운데 아덴은 바울에게 실패한 선교지였을 것입니다. 그 아덴의 대단한 지식인들에게 이론적이고 논리적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복음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덴에서 내려오면서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나는 아덴에서 왜 실패했을까? 고린도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을 안고 고린도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고린도는 풍요로운 항구 도시이며, 동쪽으로는 겐그리아 항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온 언덕마다 아스다롯 신전과 바알 신전이 있었는데, 그곳의 여사제들은 공식적인 창녀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혼탁하고 타락한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바울이 이곳에 와서 복음이 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바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나의 보호자이십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나보다 먼저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 빌립보 교회에 헌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소스데네를 나의 동역자가 되게 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린도 교회가 주님의 품이고 주님의 사랑이고 주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함께 일할 동역자들이 세워졌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 영혼들이 구원받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나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원을 갚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출발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